무제

심의(心醫) - 인고로서 만들어지는 심성과 재주

alicia87 2014. 10. 12. 06:20


2013-11-21


<허준>에서 유의태-허준 다음으로 주목할만한 관계가 바로 허준-유도지 라이벌 구도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지만 서자 출신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온갖 차별과 핍박에 직면해야 했던 허준과,
당대 최고의 의술과 덕망을 지닌 유의태의 아들로 태어난 유도지는 
처음부터 인생의 출발선 자체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준> 극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 중 하나는 "인고로서 만들어지는 심성과 재주"이다. 비록 허준이 출발선에서는 유도지보다 늦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래서 유도지는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통과 수모를 허준은 매순간 겪어야 하고, 유도지는 누리는 온갖 혜택을 허준은 꿈처럼 바라볼 수 밖에 없을지라도.. 의원 인생을 통틀어 허준의 모든 고난은 그의 인격을 더욱 다듬어지게 하고, 그의 의술이 더욱 철저하게 연마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유도지 역시 명석한 두뇌와 좋은 교육환경 덕에 상당히 뛰어난 의원으로 성장하지만.. 허준처럼 가난한 병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헐벗은 백성들을 위해 과거시험을 포기하며, 내의원 자리를 거머쥘 수도 있는 추천서가 허망히 불태워지는.. 갖은 고초와 수모, 고난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허준만큼 환자들을 긍휼이 여기는 심의 로 성장할 기회들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허준이 갖은 고초 끝에 정경부인의 병을 고치고.. 좌상 대감?으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그 추천서를 받은 유의태가 노발대발하며 "그 추천서를 받은 순간 너는 이미 의원으로서 자격을 잃었다"고 허준과 인연을 끊어버리는데.. 와.. 정말 나에게도 유의태 같은 스승이 있다면 어떨까.. 나 역시 허준처럼 당장은 격분하고, 스승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한채 방황할 것 같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였는데.. 나도 이 정도의 보상은 받을만하지 않는가 하면서..

솔직히 최근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런 마음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직에 충성했는데.. 퇴사할 즈음 몇달간은, 일이 있다면 당연하게 야근을 하면서 집에 늦는 일이 많아졌고, 그래서 서울쪽으로 방을 얻기까지 했는데.. 출퇴근 시간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드니 회사로 드나드는 일이 더욱 부담이 없어져서 내키면 토요일에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근무를 하고.. 한번은 좀 규모도 크고 급한 계약건이 있어서 휴일과 그 다음날(토요일)에도 회사엘 나갔는데, 당시 함께 작업했던 거래처 차장님이 나의 열성적인 모습을 좋게 보셨는지 따로 저녁을 먹자고도 하시고.. 생각해보면 내가 맡은 업무에는 항상 200%의 열정을 발휘했기에 갑작스레 퇴사를 하고나서도 업계 분들에게 왕왕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된 것이냐, 몸은 좀 괜찮냐..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 업계를 아예 떠날 생각이냐..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분들이다.

하지만 사극 같은 걸 보면 내가 겪은 일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초와 수모를 당하면서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그만큼 훌쩍 성장해나가는 캐릭터들을 볼 수 있으니.. 많은 위로?와 교훈이 된다.

만약 다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정말로 내가 오랜 기간 꿈꾸던대로 캐나다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미약한 열정과 재능으로나마 가장 낮은 처지의, 가장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매순간과 매일을 살아야함을...

좀 쌩뚱맞지만 <허준>을 다시 보면서 되새김질하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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